[칼럼]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백치 황제와 가남풍
[신동아방송=조도환 논설위원] ‘중국사 열전’을 보면, 진무제 사마염은 태자 사마충이 워낙 어리석고 지능이 낮은 백치라, 왕위를 물려받을 능력이 되는지 테스트하고자 사법고시 수준의 문제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사마염의 의도를 파악한 태자비 가남풍은 사법고시 출제자들을 불러 답안을 작성하게 하고 사마충으로 하여금 이 답안을 베껴 쓰게 했는데, 다행인지 필체가 좋았던 덕에 무제는 사마충의 답안지를 보고 후계자를 동생으로 바꿀 생각을 거두게 된다.
열전은 태자비 가남풍을 키가 작고 허리가 굵으며 피부가 검고 추한 용모를 가진 여인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황제 배후의 여인‘은 당시 화장 기술을 총 동원 변장 수준으로 꾸미고 다녀 그럴 듯해 보였다는 등 상반되게 기술하고 있다.
성격이 잔혹하고 질투심이 강한 가남풍이 태자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친 곽씨가 권력층에 무지막지한 뇌물을 뿌려서 가능했다고 하는데,
무제가 죽고 사마충이 황제가 되자 황후 가남풍이 처음 한 일은 후궁들과 시어머니와 양씨 일가 등 정적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었다고 한다.
질투심이 강한 가남풍도 사마충과 사이에서 아들을 낳지 못하자 ‘채홍사’를 두고 젊은 남자들을 궁 안에 불러들여 불륜을 저지르면서 ‘영웅은 호색’이라고 했다는 후안무치, 철면피의 전형으로,
가남풍은 사마충에게 주지육림, 향락만 가르치면서 정사를 제 멋대로 주물렀다고 하는데,
‘베개 밑 송사’로 매관매직은 기본에 가렴주구, 수의계약, 제멋대로 세금을 쓰고, 옥리를 동원한 ‘입 틀 막’, 철권통치에 백성들 삶은 피폐해져도 외유나 즐기는 등 나라에 망조가 들었고,
백치 사마충은 본인과 가남풍, 처가가 저지른 부정부패, 비리가 잘못인지도 모른 채 죽게 되면서, 팔왕이 난을 일으키는 등 대륙은 위진남북조 극심한 혼란기로 접어들게 된다.
공자(孔子)는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정명(正名)사상을 강조했는데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 하여 군주, 신하, 부모, 자식이 각자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면서,
사회 각 분야의 사람들이 자신의 역할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고 설파했으나,
맹자는 한발 더 나가 ‘임금이 임금 답지 못할 때' 혁명을 통해 임금도 내쫓을 수 있다는 혁명론을 전개한다.
백치 황제 사마충과 가남풍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신동아방송=조도환 논설위원] ‘중국사 열전’을 보면, 진무제 사마염은 태자 사마충이 워낙 어리석고 지능이 낮은 백치라, 왕위를 물려받을 능력이 되는지 테스트하고자 사법고시 수준의 문제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사마염의 의도를 파악한 태자비 가남풍은 사법고시 출제자들을 불러 답안을 작성하게 하고 사마충으로 하여금 이 답안을 베껴 쓰게 했는데, 다행인지 필체가 좋았던 덕에 무제는 사마충의 답안지를 보고 후계자를 동생으로 바꿀 생각을 거두게 된다.
열전은 태자비 가남풍을 키가 작고 허리가 굵으며 피부가 검고 추한 용모를 가진 여인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황제 배후의 여인‘은 당시 화장 기술을 총 동원 변장 수준으로 꾸미고 다녀 그럴 듯해 보였다는 등 상반되게 기술하고 있다.
성격이 잔혹하고 질투심이 강한 가남풍이 태자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친 곽씨가 권력층에 무지막지한 뇌물을 뿌려서 가능했다고 하는데,
무제가 죽고 사마충이 황제가 되자 황후 가남풍이 처음 한 일은 후궁들과 시어머니와 양씨 일가 등 정적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었다고 한다.
질투심이 강한 가남풍도 사마충과 사이에서 아들을 낳지 못하자 ‘채홍사’를 두고 젊은 남자들을 궁 안에 불러들여 불륜을 저지르면서 ‘영웅은 호색’이라고 했다는 후안무치, 철면피의 전형으로,
가남풍은 사마충에게 주지육림, 향락만 가르치면서 정사를 제 멋대로 주물렀다고 하는데,
‘베개 밑 송사’로 매관매직은 기본에 가렴주구, 수의계약, 제멋대로 세금을 쓰고, 옥리를 동원한 ‘입 틀 막’, 철권통치에 백성들 삶은 피폐해져도 외유나 즐기는 등 나라에 망조가 들었고,
백치 사마충은 본인과 가남풍, 처가가 저지른 부정부패, 비리가 잘못인지도 모른 채 죽게 되면서, 팔왕이 난을 일으키는 등 대륙은 위진남북조 극심한 혼란기로 접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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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는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정명(正名)사상을 강조했는데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 하여 군주, 신하, 부모, 자식이 각자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면서,
사회 각 분야의 사람들이 자신의 역할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고 설파했으나,
맹자는 한발 더 나가 ‘임금이 임금 답지 못할 때' 혁명을 통해 임금도 내쫓을 수 있다는 혁명론을 전개한다.
백치 황제 사마충과 가남풍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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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환 논설위원 smspd1@naver.com


